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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소설] 전혜정, 해협의 빛 : 2007년 가을 문학동네 신인상 당선작2025-05-12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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줄거리를 살펴 보면, 

 

나는 홀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막사의 군목은 올해 일흔세 살인데 내가 태어나기 훨씬 전부터 이곳 바닷가의 막사에서 오십 년이 넘도록 병사들에게 설교를 해오고 있었다. 이교도의 참혹한 말로에 덧붙여, 자신들의 도시에 내려진 신의 정죄를 끝까지 부정하는 저 사악한 인간들에 의해 바다로 내던져진 역병 걸린 시체들이 이곳을 황폐화시키고 있다는 것이 설교의 핵심이었다. 우리 병사들이 투기물이라 부르는 그것들은 실상 무수한 시체들이었다. 내가 이곳에 부임한 지도 벌써 삼 년이 다 되어간다. 병사들은 시체들을 끊임없이 바다에서 건져내야 했다. 그것이 바로 도시에서 우리 병사들에게 부여한 중요한 임무였다.

반세기 전 D......는 본래 우리의 도시에 속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한때 자신들의 신이기도 했던 우리의 유일신을 부정하는 뻔뻔한 이교도들이었다. 우리의 신은 경전에서나 존재하는 죽은 신이 아니었다. 자신의 형상으로 인간을 빚으신, 생명과 존귀의 신이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극심한 피로를 느꼈다. 바다 저 너머의 막연한 어떤 곳만을 줄곧 응시해야 하는 임무는 서서히 풍화되어가는 암석처럼 나의 심신을 지치게 했다.

첫 번째 투기물은 13번이 건져냈다. 정오 무렵ᄁᆞ지 병사들은 투기물을 건져냈다. 바다 위를 부유하는 투기물들을 어느 정도 건지고 난 뒤, 우리는 해안으로 되돌아가기로 의견을 모았다. 오후의 화장은 소란 속에서 진행됐다. 밤이 깊도록 바닷가의 불꽃은 사그라들지 않았다.

사흘간 계속되던 폭풍이 그쳤으나 병사들은 여전히 막사 안에 머물러 있었다. 병사들에게는 막막한 바다를 주시하며 언제 나타날지 모르는 D......의 불빛을 감시하는 보초병 역할만이 주어졌다.

역병이 8번의 생명을 앗아가는 데 걸린 시간은 이틀로 충분했다. 고열로 온몸이 붉게 달아오른 8번의 사타구니에서 좁쌀만한 수포를 처음으로 발견한 이는 군목이었다. 신의 역병은 두 번째 희생자로 군목을 지목했다. 군목의 간호는 10번이 맡았다. 10번은 별다른 말없이 홀로 손수레에 군목을 싣고 막사를 떠나 움집으로 거처를 옮겨갔다.

군목의 사체는 온통 하얀 천으로 감겨 있어 신께 바치는 하나의 성물처럼 보였다. 막사 안을 식초로 닦아내던 우리는 도시로 보내는 군목의 보고서가 담긴 봉투를 발견했다. 그 보고서에는 D......의 출신인 이교도의 자식들에게서 배교의 혐의를 벗겨달라는 말이 적혀 있었다. 열여덟 명의 병사들은 침묵에 빠졌다.

나는 괴괴한 어둠 속에 잠겨든 초소로 들어섰다. 웅크리고 있던 검은 짐승, 10번이 내 쪽을 바라보았다. 10번은 나에게 D......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 암벽 아래로 떨어졌다.

나는 홀로 수평선을 바라보고 있었다. 아무래도 오늘밤엔 불빛이 보이지 않을 듯했다. 나는 그의 말대로 D......로 갈 작정이었다. 그곳이 정말 지옥인지 알고 싶었다. 나는 이것을 나의 신이 내게 주시는 하나의 계시로 여겼다.

 

라는 내용이다.

 

수평선에서 불빛이 보이는지를 지켜보는 일을 맡은 나와 병사들. 그들은 D......의 출신인 이교도의 자식들이라는 것을 군목이 죽고 나서 군목이 도시로 보내는 보고서를 통해 알게 된다. 나는 D......로 가라는 말을 남기고 암벽 아래로 떨어진 10번의 말을 듣고, D......로 갈 작정을 한다. 그곳이 정말 지옥인지 알기 위해서.

해협에 갇힌 사람들은 얼마나 답답할까. 그들이 이교도의 자식들이라는 꼬리표를 달고 그곳에 유배되었다는 것을 알고 나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D......가 지옥이고, 이교도의 자식들이라는 꼬리표를 붙인 행위는 정말 신이 원하는 정당한 일일까, 하는 생각들을 하며 이 소설을 읽었다.

인간의 고정관념이라는 것, 신이라는 존재, 신의 뜻이라는 게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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