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남자가 계단을 오른다. 남자는 일 층부터 옥상까지 계단이 247개인 건물을 찾고 있다. 남자가 여자를 처음 만났던 때를 기억한다. 남자의 첫 직장에서다. 어느 날 동문회에서 만난 선배가 남자에게 캐릭터를 만들고 삽화를 그리는 자기 회사로 들어오라고 해서 입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남자가 여자를 본 것은 바로 그때였다. 여자는 컴퓨터를 만지는 대신 붓이나 파스텔을 손에 쥐었다. 여자가 남자에게 그림을 넘기면 남자는 그 자리에서 클라이언트의 기획의도에 맞아떨어지는지 검토한다. 남자는 다시 계단을 오른다. 계단은 이번에도 240개이다. 남자는 문득 계단을 오르는 일이 사람 속으로 들어가는 일과 흡사하다고 생각한다. 여자는 씨앗들을 그렸다. 동화용 삽화였다. 어느 날 여자가 남자의 옷깃을 붙잡았다. 여자는 자기가 사는 곳이라고 하며 종이를 한 장 건넸다. 247개의 계단이 있는 건물이라고 했다. 여자는 남자에게 남자의 초상화가 그려져 있는 종이를 건넸다. 이후로 남자는 여자가 그림 그리는 과정을 자주 지켜봤고, 여자는 남자에게 그림을 가르쳐주었다. 점심시간이 거의 끝나갈 무렵, 남자는 계단이 247개인 건물을 찾았다. 여자는 사람들이 남자의 초상화를 보면서부터 말이 부쩍 늘었다. 누군가를 시작으로 사람들이 하나둘씩 여자에게 초상화를 부탁했다. 여자는 처음 특기를 발견한 사람처럼 말하는 것에 집중하기 시작했다. 회식 때 뒤늦게 회식자리에 온 여자는 고기를 우겨넣다가 결국 음식점 골목 뒤편에서 먹은 것들을 다 게워냈다. 여자는 며칠이 지나도 회사에 나오지 않았다. 남자의 눈에, 복도 제일 끝 집의 옆에 난 문 하나가 보였다. 문을 열자 물감 냄새가 휙 끼쳐온다. 그 방 안에는 여자가 있다. 여자는 웅크려 앉아 망원경을 들고 건너편 건물의 사람들을 쳐다보고 있다. 남자는 창밖을 내다본다. 그리고 여자의 서랍에서 가져온 망원경을 꺼낸다. 망원경 렌즈 속으로 사물이 가깝게 다가온다. 남자는 붓을 든다. 신입에게 남자는 문제를 낸다. 자네가 있는 이 층까지 오르는 데 몇 개의 계단이 있는지 혹시 아느냐고. 신입의 표정이 어리둥절하다. 남자는 207번째 계단을 밟고 복도를 따라 걷는다. 남자가 문을 열자 물감 냄새가 풍긴다. 남자는 가방을 열고 벽에 그려진 그림 위에 흙색으로 덧칠했다. 여자가 눈에 망원경을 대고 있는 부분이다. 그리고 거기에 씨앗 하나를 그린다. 남자는 방 안을 둘러보고 밖으로 나온다. 여자의 오래된 나무는 안전하다. 라는 내용이다. 남자가 선배의 회사에 입사해서 그림을 그리는 여자를 만나고, 여자에게 그림을 배우고 여자를 알아간다. 여자는 207번째 계단이 있는 곳에 살고 있다고 했고, 남자는 여자가 사는 곳을 찾아간다. 여자는 회식을 끝으로 회사를 그만두었고, 그림을 그리는 일을 남자가 맡아서 하게 된다. 남자는 여자가 살던 집을 찾아가서 씨앗 하나를 그린다. 그 씨앗은 아주 붉고 생명력 넘치는 싱싱한 꽃이 될 것이다. 슬프지 않은 내용의 소설인데, 읽으면서 나는 마음이 애잔해졌다. 대학 졸업 후 취직하지 못했던 나에게 자기 회사에 입사하라고 손을 내밀어준 선배와, 손으로 그림을 그리는 일을 도맡아하는 그녀가 나에게 직접 그림을 가르쳐준 일, 그로 인해 그녀가 회사를 떠났을 때 그 일을 내가 맡아하게 되고 나는 그녀가 살던 집에 찾아가 씨앗을 하나 그려놓고 나온다는 이야기가 단순한 이야기인 것 같으면서도 결코 단순하지 않은 우리의 인생을 담은 이야기로 느껴졌다. 207번째 계단이 있는 건물을 찾으려고 애쓰는 남자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져서, 내가 207번째 계단을 직접 오르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