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언니는 12월 31일 열한 시 삼십사 분에 태어났고, 나는 1월 1일 영 시 삼십일 분에 태어났다. 어머니는 곧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어머니는 당신이 낳은 두 딸을 안아보지 못했다. 장례식이 끝나자 아버지는 언니를 업고 나를 안은 채 고향으로 향했다. 할아버지는 여전히 나이트클럽의 사장이었고, 아버지는 그 밑에서 일을 했다. 나이트클럽은 배다른 동생들이 각자 딴주머니를 차는 바람에 경영이 좀처럼 좋아지지 않았다. 우리를 키운 것은 누룽지 할머니였다. 누룽지 할머니는 우리의 얼굴을 쓰다듬으면서 당신의 손자 이름을 중얼거렸다. 언니는 자장면을 배달하던 오토바이가 속도를 줄이지 않았을 때에도 두 팔을 벌리고 보도블록 가장자리를 따라 조심스럽게 걸었다. 결국 나는 혼자 초등학교에 입학했다. 고등학교 일학년 때 할아버지가 돌아가셨다. 삼촌들은 유언장에만 관심이 있었다. 아버지는 유산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삼촌들의 뺨을 한 대씩 때렸다. 그리고 아버지는 매달 25일이 되면 돈을 부치겠다는 편지를 남긴 채 집을 나갔다. 아버지는 기차칸에서 돌아가셨다. 나는 다니던 여행사를 그만두고 아버지가 탔던 5호 차량 좌석번호 25번에 타서 서울과 부산을 오가다가 Q를 만났다. Q는 나를 중국집의 주방보조로 취직시켜주었다. 나는 찜질방에서 지냈다. 목욕을 하고 나오다가 바닥을 닦고 있는 여자의 발을 밟았다. 여자의 이름은 W였다. 학창시절 W의 별명은 유령이었다. W와 나는 자주 냉면을 먹으러 다녔다. W는 자신이 만든 아주 매운 소스를 늘 가지고 다녔다. 중국집 문을 닫는 날이면 Q가 찜질방으로 왔다. W가 일을 하는 동안 나와 Q는 요가와 재즈댄스를 배웠다. 하루는 셋이 고스톱을 치고 있는데 고등학생으로 보이는 앳된 여자애가 다가왔다. 고등학생은 아버지가 금고에 보관해 두었던 보물지도를 가지고 있다고 했다. 우리는 보물을 찾으러 가기 위해 운전을 배우고, 등산을 하고, 침낭을 구매하고, 낡은 트럭을 샀다. 보물지도에 그려진 곳에 가서 땅을 팠더니 커다란 바위가 나왔다. 우리는 그곳에 망원경, 등산화와 선글라스, 트럭 열쇠 등을 집어 던지고 구덩이를 덮은 후 내려왔다. 보물을 찾으러 갔다 온 사이, 주방장이 도망을 갔다. 나는 Q의 중국집 자리에 만두가게를 차리자고 했다. 만두는 Q가 만들고 쫄면은 W가 만들면 될 것 같았다. 나와 고등학생은 주문을 받고 음식을 나르면 될 것 같았다. 우리는 돈을 모아 영업을 시작했고, 작은 아파트 네 채와 소형차 네 대로 재산은 불어났다. 12월 31일 밤, 나는 차를 몰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리며 언니의 생일과 나의 생일을 혼자 축하했다. 그리고 톨게이트에서 유턴을 한 다음 집으로 돌아왔다. 라는 내용이다. 보물지도에 그려진 곳에 망원경과 등산화와 선글라스 등을 묻고, 차를 몰고 영동고속도로를 달려서 다시 유턴을 한 다음 집에 오는 이야기 사이에 나와 W와 Q와 고등학생의 이야기가 있다. 현실적이지 않은 이야기이지만, 소설이라서 가능한 이야기이지만, 소설을 읽는 내내 내가 Q가 되고 W가 되고 주인공 내가 된 것처럼 동화되는 느낌을 받았다. 보물지도에 그려진 곳에서 보물을 찾지는 못했지만, 나와 W와 Q와 고등학생은 함께 살고 함께 일하면서 보물을 만들어 갔다는 생각이 든다. 삶의 유턴지점에서 보물지도를 묻고 다시 돌아와 일상을 살아간다면, 삶에서 보물을 캐듯 그런 소중한 감정들을 느낄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