줄거리를 살펴 보면, 종로구 옥인동 구시가지 골목 한편에 세워진 화강암 기념비는 인왕산 일대에서 숭배되던 선바위를 떼어다 옮긴 것이다. 외진 길목 한가운데 우두커니 전시된 이 바윗돌의 용도를 아는 사람은 이제 남아있지 않은 것 같다. 남자는 거석 뒤편의 작은 야외 산책로 쪽으로 멀찍이 앞서가다가 마침내 어떤 건물에 다다르고 이내 건물 안으로 홀연 사라져 버린다. 1908년 10월 21일 인왕산 기슭에 개소된 대규모 수용시설. 시텐노 가즈마에 의해 고안된 한국 최초의 근대식 감옥을 너는 잘 알고 있다. 경성군사통신연구소가 너의 이름이다. 어느 오후의 텅 빈 여객 열차 안에서 젊은 여자가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열차가 용산에 도착하자 그녀는 곧장 지하철로 갈아탄다. 옥인동에 도착한 그녀는 마침내 커다란 비석 앞에 서 있다. 그녀는 선배에게 전화를 한다. 둘은 기념비 뒤에 숨겨진 산책로를 걸어 올라간다. 선영은 연구소 안으로 들어간다. 목소리가 말하고, 선영은 스마트폰의 녹음 기능을 켠다. 군인들은 이름 없는 건물 앞에 다다른다. 소위는 녹슨 출입문을 두드리고, 문 옆의 전자 기판에서 낯선 음성이 흘러 나온다. 물건을 옮긴 병사들을 목소리가 지하층으로 이끌고 간다. 병사들은 지하층에서 파괴적인 음향을 만들어내느라 얼이 빠져 있다. 소위는 ‘음성자료 제공자 명단’을 서류철 사이에 되돌려놓는다. 정신 나간 병사들은 착란에 시달려서 복귀 후 단체 면담 시간을 가지게 된다. 소리를 전달하는 매체는 열일곱 개의 축음기였다. 건물 지하에서 메가헤르츠 크기의 노래가 울려퍼졌다. 각 층과 연구동 시설들을 떠받치고 있는 철근 기둥들이 미세하게 떨리더니 몇 분 뒤에 건물이 와르르 무너져 내린다. 당신은 기념비 앞을 떠나버린다. 이따금 당신이 부는 휘파람 소리. 성부가 하나뿐인 그 노래는 일면 쓸쓸하고 외로운 구석이 있다. 기억도 목소리를 가질 수 있다면 좋겠다. 모놀로그 또는 아리아와 같은. 라는 내용이다. 역사적인 이야기와 목소리에 대한 이야기이다. 열일곱 개의 축음기로 그 소리는 퍼진다. ‘중얼거리는 인간의 음성신호와 닮았다든지, 그렇다면 어떤 말들은 언젠가 음악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가령, 손을 떠는 여자 하나가 어둠 속에서 내 인생은 망했고 앞으로도 망할 거야. 라고 수없이 반복해서 말할 때, 단 한 순간, 그녀의 음성 파형이 수백 곡의 교회 아리아 가운데 한 소절과 정확하게 맞물린다면, 과연 누가 이것을 음악이 아니라고 말할 수 있을까’. 라는 소설 문장과 <전자 시대의 아리아>라는 제목이 이어지는 느낌이다. 독특한 방식으로 기술된 이 소설을 의미있게 읽었다. 소리가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 소리의 연구, 그리고 그 소리 자체가 인간에게 지독한 고문이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는 이 소설. 옥인동의 기념비를 기억하는 이는 남아있지 않지만, 역사적인 사실은 지워지지 않는다는 소설적 메시지가 마음에 와 닿는다. |